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토크타미쉬 칸 (문단 편집) == 생애 == 토크타미쉬는 본래 [[킵차크 칸국]]의 황족으로서 당시 청장 칸국의 칸이었던 우루스 칸의 조카였다. 그의 시대에 킵차크 칸국은 서쪽의 백장 칸국과 동쪽의 청장 칸국으로 분봉되어 있었는데 이 때 그는 [[티무르]]의 후원을 받아 청장 칸국의 우루스 칸과 그의 아들들에 대항하고 있었다. 토크타미쉬는 1378년 우루스 칸의 아들이었던 티무르 말릭을 상대로 승리를 거둠으로써 마침내 청장 칸국을 손에 넣었으며, 이어서 1381년 백장 칸국의 실력자 마마이마저 제압하고 오랜 분열을 겪던 킵차크 칸국을 마침내 통일시킨다. 당시 [[킵차크 칸국]]은 1380년 마마이가 [[모스크바 대공국]]과의 쿨리코보 전투에서 패하면서 러시아 제공국들에 대한 지배권을 잃을 위기에 처했는데, 토크타미쉬 칸이 이때 마마이를 몰아내고 칸 위에 올라 기세등등하던 [[모스크바]]를 기습, 점령(!)해 [[드미트리 돈스코이]]로부터 사죄를 받아냈다. 이 때 모스크바의 저항이 거세고 성벽도 견고해서 쉽게 함락하기 어렵게 되자 책략을 써서 이를 이겨냈다. 그는 모스크바 사람들에게 성문의 수비가 너무 견고해 점령을 포기했으니, 본인의 친위대를 데리고 성 안을 한번 둘러봐도 되겠냐고 제안했는데, 순진한 모스크바 사람들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고 토크타미쉬를 성 안으로 들여보내고 말았다. 토크타미쉬는 즉시 성문 수비대를 무력화한 뒤 성문을 장악했고, 그 뒤로 킵차크의 군대가 따라서 모스크바로 진입해 버렸다. 이 때 모스크바가 입은 타격은 엄청나서 거의 불바다가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살해당했다. 그 덕분에 러시아의 독립은 정확히 100년 늦춰졌다. 이후 토크타미쉬의 세력 확장을 경계한 리투아니아가 침공해왔으나 이마저도 격파한다. 이후 토크타미쉬는 남쪽으로 눈을 돌려 중동을 침공, 아제르바이잔과 페르시아 북서부 일대를 자국의 땅으로 편입시킨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쓰러져 가는 킵차크 칸국을 다시 [[중흥]]시킨 [[명군]]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당시 그의 동맹이었던 [[티무르]] 역시 페르시아 동부를 정복하고 있었고, 이에 남다른 야망을 가진 두 군주의 군대는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었던 것. 이러한 둘의 위태로운 관계는 마침내 1386년 티무르가 킵차크 칸국의 영토인 타브리즈와 아제르바이잔에 쳐들어오면서 표면에 드러났으며, 이에 분노한 토크타미쉬는 이듬해 티무르의 본거지인 [[트란스옥시아나]]를 침공했으나 폭설이 내리면서 후퇴하게 된다. 이후 티무르와 토크타미쉬의 관계는 적대적으로 변했고 수 차례의 충돌 끝에 1391년 콘두르차 강의 회전에서 티무르가 토크타미쉬의 군대를 제압했다. 그 뒤 티무르는 남쪽으로 다시 시선을 돌려 페르시아 정복 사업을 이어나갔지만 토크타미쉬는 금세 세력을 회복해 그 뒤로도 여러 번 티무르를 괴롭힌다. 이에 [[티무르]]는 마침내 그의 최대 [[라이벌]]인 토크타미쉬와 그 세력을 뿌리 뽑기 위해 1395년 대대적인 정벌전을 벌이기로 결심한다. 양측의 군대는 [[테레크 강 전투|테레크 강에서 결전을 벌였으나]], [[킵차크 칸국]]의 장군들 중 일부가 토크타미쉬의 통수를 치면서 [[티무르]]가 대승을 거둔다. 이후 [[티무르]]는 킵차크 칸국의 수도인 사라이를 무너뜨리고는 테무르 쿠툴룩(Temür Qutlugh)을 킵차크 칸국의 칸으로 앉혔다. 한편 [[테레크 강 전투]]에서 패배한 토크타미쉬는 [[리투아니아 대공국]]으로 피신하여 당시 리투아니아의 대공이던 [[비타우타스]]에게 의탁했다.[* 이 때 토크타미쉬를 따라 리투아니아 대공국 땅으로 들어온 세력의 후손이 오늘날의 [[립카 타타르]]이다.] 토크타미쉬는 비타우타스를 설득하였고 1397년 비타우타스와 토크타미쉬는 군대를 이끌고 킵차크 칸국에 쳐들어 간다. 이들의 군대는 승승장구하여 흑해까지 진출하였고 1399년 보르스클라 강에서 킵차크 칸국의 테무르 쿠툴룩의 군대와 전투를 벌이게 된다. 그러나 전투 도중 백장 칸국의 에디구가 나타나면서 앞뒤로 포위당한 리투아니아의 군대는 대패를 당한다. 전투가 끝나기 직전 패배를 예감한 토크타미쉬는 현재 러시아의 [[튜멘]] 지방으로 도주하여 재기를 노렸으나, 결국 1406년 에디구가 보낸 암살자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토크타미쉬의 사후 [[킵차크 칸국]]은 다시는 예전의 위세를 회복하지 못하였으며, 이후 [[모스크바 공국]]의 영토 확장과 각지의 군벌들의 반란으로 인해 점점 영토가 작아지다가 1502년 [[크림 칸국]]의 공격에 의해 멸망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